비난과 비판의 차이. 진중권과 홍세화를 중심으로..


논객, 진중권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논객은 대중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 해야할 말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그의 말처럼 그는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말보다는 자신이 해야할 말을 한다. 그가 정의한 논객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해야할 말. 논객으로써 책무를 가지고 하는 말들이란 대게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여 결정한 말들이다. 당연히 자신이 해야할 말은 자신의 입장에서 결정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의 말과 행동들에는 뭔가 꺼림칙한 것이 존재한다. 나만 그러한 것일까? 그에 대한 평가가 극적으로 갈리는 것을 보면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진중권의 말들은 자주 사회에서 논란이 된다. 황우석과 디워에 관한 평. 최근에는 나꼼수에 대한 평들까지. 예시는 많다. 한때, 나는 그의 공격적이고 핵심을 꿰뚫는 듯한 독설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2009년 12월이던가? 내가 재학 중인 학교에 진중권 교수와 홍세화씨가 방문했다. 두 분 모두를 좋아했던 당시의 나로써는 기쁜 소식이였고, 당연히 강의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강의를 듣고 나서 두 분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달라졌는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관점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또 동시에 전혀 상이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관점을 존중한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덧붙여, 진중권과 같은 비난자 역시 그들 고유의 역할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사회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점도 이야기 하고 싶다.

당시 강의의 1부는 진중권 교수가 2부는 홍세화씨가 맡았다. 매체를 통해서 봐온 것과 같이 진교수는 거침없는 입당을 과시했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그때 청강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 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나만이 그 메시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청강자들도 아무런 메시지를 느끼지 못한 채, 그저 그의 독설에 통쾌해만 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의 말들은 아주 공격적이었고, 그만큼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하지만 그의 비난과 독설이 자극적일 수록 오히려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적었다.

2부는 홍세화씨. 당시 자신을 홍선배라고 불러주라 하였으니, 이제부터 홍선배라 지칭하겠다. 홍선배는 인자한 웃음과 배려를 가진 논객이였다.(논객이라 불러도 될 지 모르겠으나. 일단 그렇게 부르겠다) 그의 부드러움과 겸손함은 지금까지도 마음 속에 남아 그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는 진 교수만큼 말을 잘하지 못했다. 본인도 자신의 말이 서툼을 미안해 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들은 아직도 하나의 메시지로 남아 있는데, 예를 들자면, 깨진 달걀이론을 통한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 우리가 가지지 못한 똘레랑스(관용)의 필요성. 물신만을 쫓아가는 비인간적 사회의 문제점. 그리고 물질이 아닌 인간중심의 세상이 되기를, 다툼보다는 화해와 상생의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진실함. 돌이켜 보아도 큰 여운이 남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진교수는 공격적인 말투로 비난을 즐겨하는 사람이다. 그는 현상을 분석하고 공격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혹은 대안이 적다). 뿐만 아니라 자기반성과 성찰을 결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다. 자극적이기 때문에 순간적인 호응은 크나, 이후에 잔잔히 남는 여운이 없다. 고민거리를 던져주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쇼 또는 오락이라고나 할까? 분명 그런 그에게서도 어떠한 의미를 찾는 사람이 존재하겠지만, 나는 진중권이라는 아이콘에 대해 의미를 던지는 존재라기보다는. 오락거리. 가십거리를 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홍선배. 그는 진중권에 비해 지루하다. 남을 배려하는 말투,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것은 그의 지루함을 더 확장시킨다. 하지만 그는 남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면서 대안을 제시한다. 문제점을 고민하게 만든다. 따뜻한 옆집 아저씨가 타이르듯이 말을 건네면서.. 진중권은 이것이 답이다,! 라고 이야기 하지만 홍선배는 저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당신들의 생각은 어떠하세요? 라고 이야기 한다. 의견이 다른 상대를 적이 아닌 동료로 생각하며,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이해한다. 나는 이 두 사람의 강의를 지켜보고 난 뒤, 한 사람을 마음 속에서 떠나보냈고, 다른 한 사람에 대해서는 존경과 연모의 마음을 품게 되었다.

오늘 이 두 사람에 대한 경험과 나의 관점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예시를 통해 비난과 비판의 차이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인들은 비판을 비난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비판은 ' 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리어 판단하거나 밝힘' 을 뜻하며, 비난은 '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을 뜻한다. 이 둘은 이토록 다르다. 진중권의 말하기가 비난이라면, 홍세화의 말하기는 비판이다. 진중권은 자신의 영특한 머리로 상대의 행위나 사회 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공격적인 언어로 지적, 비난한다. 그것은 평소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하지만 나설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며, 그들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 ' 아~ 참 말 잘한다. 속이 시원하구나' . 하지만 그것은 비난일 뿐 비판이 될 수 없다. 비판에 따라야만 하는 중립성과 대안의 제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비난을 반긴다. 이 비난자를 추종하며 따른다. 왜? 내가 할 수 없는 걸 말하니까. 그것도 속이 쉬원할 정도로.. (최근 보여지는 나꼼수에 대한 열풍에서도 이러한 성향이 일부 보여지는데, 그것은 다음에 이야기 하기로 하자)  비난의 역할, 사회적 효용성은 이 정도에 국한된다. 스트레스 해소와 '아, 이런일이 있구나'라는 인식 정도(?). 비판도 동일하게 비난을 하긴 하지만 중립적 입장으로 말한다는 것,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 그리고 그 대안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상대를 설득하고 대화한다는 것 때문에 비난과는 다르다. 그렇기에 우리는 비난을 일삼기 보다는 비판을 일삼아야 하고, 비난을 하는 사람보다는, 비판을 하는 사람을 추종해야 한다. 이 둘의 차이를 체감하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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