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칼로레아와 철학

1808년 나폴레옹 시대부터 시작된 프랑스의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는 대학의 전공 분야에 따라 계열별로 시행되지만, 계열에 상관없이 '불어, 외국어, 역사와 지리, 수학, 철학'은 공통 과목으로 치러된다. 이들 중 매년 국민 전체의 관심이 쏠리는 과목이 있다. 바로 철학이다. 철학 시험은 4시간 동안 3개의 주제 중 1개를 택해 논문 형태로 작성하는 시험으로 프랑스 사회에선 지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여겨진다. 그래서 바칼로레아 시험 후 온 국민이 올해의 철학 문제를 두고 토론을 이어가며, 전 언론에서도 중요한 뉴스로 철학 문제를 다룬다. 뿐만 아니라, 유명인사와 일반시민들이 참석하는 다양한 토론회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가히 진리를 사랑하는 국민들이라 할 만하다.

 * Philosophy(철학) = Philos(사랑) + Sophia(진리)



바칼로레아에 출제된 철학 문제

문제1.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서 도덕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문제2. 우리는 일을 함으로써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나.


이와 반대로 한국의 대학에선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 혹은 재학생 충원율이 낮다는 이유로 인문학과들이 폐쇄되고 있다. 철학과도 그 주요한 대상 중 하나다. 지난 6월엔 한남대 철학과가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폐지됐고, 경남대 철학과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상당수의 대학들이 철학은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철학과를 폐지하고 있다. 하지만, 철학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철학이란 학문 자체가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의미와 가치나 인간과 사회의 근본적 모습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다. 철학은 우리를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지적 성찰과 반성의 학문이기도 하다. 이를 자본주의적 논리 때문에 소홀하게 생각해선 안된다. 


철학이 없는 대통령과 정치인, 철학이 없는 CEO의 존재는 사회를 빈곤토록 한다. 이들이 철학을 가질 수 없던 이유는 바로 오늘 자본의 논리로 철학과가 연거푸 문을 닫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도 가늠할 수 있다. 오늘날 프랑스의 문화적, 정치적 수준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프랑스의 높은 문화와 정치수준이 철학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점은 철학을 위시한 인문학이 사라진 사회는 좋은 문화와 높은 정치적 수준을 가진 사회로 거듭날 수 없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던진다. 1808년 '바칼로레아'가 만들어진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서'였다. 우리 역시 바칼로레아에 깃든 이 높은 이상을 교육의 현장에서 실천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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