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의 누> 쓴 이인직은 나라 팔아넘긴 '매국노'였다. :: 김순종닷컴

<혈의 누> 쓴 이인직은 나라 팔아넘긴 '매국노'였다.

고교 시절 이인직의 <혈의 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배운 바 있다. "이 소설은 문학적 수준이나 가치로 보아 근대소설의 효시로서 한국 신소설의 대표적 작품이다." 지금도 숱한 상식 문제들에서 이인직의 <혈의 >는 한국 근대소설의 효시라 평가받고 있다. 문학적 지식이 적은 필자로선 <혈의 >가 한국 문학에서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국 신소설의 대표작이란 <혈의 >를 쓴 이인직을 위대한 작가라고 가르쳐선 안된다는 점은 알고 있다. 그가 천인공노할 매국노 이완용의 비서로서 나라를 팔아먹는 것에 일조했던 '매국노'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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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의 >를 쓴 이인직은 1910년 매국노 이완용(당시 총리)의 비서로서 나라를 팔아먹는 비밀 협상을 주도한 바 있다. 러일 전쟁 후 일본 정계에선 한국을 점령하자는 여론이 적지 않았고, 당시 한국 내부에선 이완용이 영수로 있는 노론과 이용구가 주도하는 일진회가 나라를 팔아먹기 위한 '매국적 경쟁'을 전개 하고 있었다. 이 두 집단은 누가 먼저 나라를 팔아 자신들의 안위를 도모할 지 경쟁했는데, 정부 고관들로 구성된 노론에 비해 일진회는 평민 출신이 주축돼, 더 거칠게 매국 공작을 도모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이완용은 이인직을 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쓰에 보내 일진회를 제치고 나라를 팔아먹는 비밀협상을 한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경성일보>가 1934년 11월 25일부터 3회에 걸쳐 실은 '일한병합'교섭과 데라우치 백작의 외교 수완'이란 기사에 따르면, 이인직은 1910년 8월 4일 밤 통감부 외사국장이던 고마쓰를 비밀리에 만나 다음과 같은 말을 주고 받았다. 

 

고마쓰 : 병합 후 한국의 원수는 일본 왕족의 대우를 받으며 언제나 그 위치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세비를 지급받으시게 된다. (중략) 또한, 내각의 여러 대신은 물론 다른 대관으로서 병합 실행에 기여하거나 혹은 이에 관계하지 않은 자에게까지도 모두 공작,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영작을 수여받고 세습재산도 받게 된다.

 

이인직 : 귀하께서 말씀하신 바가 일본 정부의 대체적 방침이라고 한다면 대단히 관대한 조건이기 때문에 이 총리(이완용)가 걱정하는 정도의 어려운 조건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이 대화에 따르면, 이인직은 나라를 넘기는 대가로 일본이 귀족 작위와 은사금을 주겠다고 하자 기뻐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인직은 이완용에게 위의 대화를 보고했고, 보고를 들은 이완용은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고자 매국을 결심, 나라를 넘기는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인직은 이완용과 함께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중 한 명이었다. 또한 기록에 따르면, 전국을 순회하며 조선왕조를 비판하고 조선과 일본의 병합을 정당화시키는 등 노골적인 친일 행보를 보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를 한국 신소설의 효시인 <혈의 >를 쓴 위대한 작가로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심지어 <한국현대문학대사전>에선 <혈의 누>에 대해 "신교육사상, 자유결혼관, 봉건관료에 대한 비판, '자주독립사상' 등의 근대적 정신이 기저에 깔려 있기도 하다." 라고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역사학계의 원로 인사 중 한 명은 '한국은 식민사관을 완전히 극복했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인직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와 그의 친일적 행위에 대한 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여전히 한국 사회 곳곳에는 '일제의 잔재'와 '식민사관'이 남아있는 듯 하다. 부디, 필자의 학창시절처럼 지금의 학생들이 <혈의 누>란 문학 작품을 읽으며 그 저자인 이인직에 대해 위대한 작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길 바란다. 일반 시민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참고자료 : 우리 안의 식민사관 [저자 이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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