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선거철만 되면 우리 국민들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말이다. 정치인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큰 차이가 없고, 그 때문에 누가 당선이 되든지 우리의 실생활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선거에 관심을 두는 것보다는 일상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믿고 있지만 이는 틀렸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 누가 국회의원이 되는가?'는 우리 삶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이 같은 나물도 같은 밥도 아닌 까닭이다. 물론 그들 간에 차이가 적을 수는 있다. 실제 차이가 적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비의 날개 짓이 태평양을 건너오면 폭풍으로 변한다는 '나비효과'처럼, 때론 미세한 차이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우리가 정치에, 그리고 선거에 관심을 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어느 정당을 편파적으로 지지하려고 이러한 말을 늘어놓냐고?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정치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치느냐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나의 얘기가 아니라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의 얘기다. 그는 저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를 통해 정치가 얼마나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입증했다.


제임스 길리건은 오랜기간 미국에서 일어나는 폭력문제를 연구해왔다. 그러던 중 그는 살인율과 자살률의 증감에 정치가 적지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어느 정당이 백악관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자살률과 살인율의 증감에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점을 알아낸 것이다.


그는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자살률과 살인율을 분석해 그래프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그래프는 세 번의 산봉우리와 세 번의 골짜기 형태를 나타냈다. 그래프가 산봉우리 형태를 띄는 시기는 공화당이 정권을 잡았던 시기다. 그래프가 골짜기 형태를 띄는 시기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던 시기다. 공화당이 정권을 잡으면 자살률과 살인율이 증가하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자살률과 살인율이 감소했던 것이다.



그래프가 이러한 모습은 띤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자살과 살인의 발생률은 공화당 대통령이 취임한 후부터 늘기 시작하여 임기 말에는 최고점에 달했다. 반대로 민주당 대통령이 취임하면 이 비율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해 임기 말에는 최저점에 도달했다. 이는 그래프의 변곡점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분석 결과 나타난 수치 역시 이를 증명했다. 1900년부터 2007년까지 공화당 집권기에 살인율과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9.9명이 증가했고, 민주당 집권기에는 18.3명이 감소했다. (현재 미국 인구 3억명을 기준으로 하면 공화당 집권시 연간 59700명 증가, 민주당 집권시 54900명 감소)


제임스 길리건은 처음에는 이러한 현상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고 봤다. 그래서 다른 변수가 살인율, 자살률의 증감에 미친 영향을 조사했지만, 전쟁이나 경제적 상황과 같은 변수들은 자살률과 살인율의 증감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 결국 대통령의 출신정당이 어디인가가 자살률과 살인율의 증감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주요한 독립변수였던 것이다.


이는 각 당의 정책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제임스 길리건에 따르면 공화당은 부자들의 지지를 받기 때문에 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추구한다. 고용이 많으면 지출이 클 수 밖에 없는 부자들을 위해 실업률을 높이는 정책을 펴며, 이 때문에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된다. 반대로 서민들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은 실업률을 낮추는 정책을 펴며, 이 때문에 경제적 양극화는 완화된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실업이나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부여하는데, 수치심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강해지면 이는 폭력으로 귀결된다. 자기자신을 해치는 자살이나, 타인을 해치는 살인으로 말이다.


 


이처럼 우리의 편견과는 달리 어떠한 정당이 정권을 잡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큰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우리의 생명마저 좌지우지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치에 무관심하다. 시민의 고귀한 권리인 선거권을 포기하기도 한다. 


제임스 길리건의 이야기는 미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의 얘기일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어떠한 정당이 정권을 잡는가에 따라 우리 삶에 적지않은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을 경험했지 않던가.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로 정치를 혐오하며,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제임스 길리건을 이 책을 통해 말한다. 모든 정치인이 해로울 수는 있다. 그러나 분명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덜 해롭거나 더 해롭다. 비교적 덜 해로운 정치인을 선택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정치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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