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 픽션인 듯 픽션 아닌 실화. :: 김순종닷컴

영화 <베테랑>, 픽션인 듯 픽션 아닌 실화.

 

 

픽션은 언제나 현실에 기반을 둔다. 최근 차트를 역주행하며 흥행몰이 중인 류승완 감독의 신작 <베테랑>도 그렇다. 영화 <베테랑>은 갖은 범죄행위를 다 저지르면서도 금력(권력)에 의해 보호받는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와 한 번 꽂힌 범죄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하는 형사 서도철(황정민)의 한 판 싸움을 담아낸 영화다.

 

<베테랑>은 <암살>에 이어, 국내작으로 올해 두 번째 누적 관람객 수 1000만 기록을 앞두고 있다. 이 두 영화가 흥행하는 것을 두고 평론가들은 정의가 없는 시대에 정의를 바로 세우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영화 <암살>은 친일파 청산의 문제를, <베테랑>은 갖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기득권으로 군림하는 재벌을 처단하는 형사의 얘기를 각각 담았다.

 

영화 <베테랑>은 영화일 뿐이지만, 우리에게 낮선 얘기가 아니다. 어디서 본 듯한 기분, 기시감마저 든다. 이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재벌의 문제를 고스란히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필자도 영화를 보며 떠오른 실제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류승완 감독 역시 영화를 제작하며 그간 재벌들이 물의를 일으켰던 여러 사건들을 참조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래서 영화 <베테랑> 속의 사건들과 현실 속의 사건을 비교해봤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줄거리는 최대한 생략했다.

 

 

# 장면1

극 중 조태오(유아인)는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화물노동자 배 씨(정웅인)를 사무실로 불러 폭행한다. 420만원의 체납임금을 돌려받기 위해 회사 앞에서 시위를 하며 회사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조태오 자신을 피곤하게 했다는 이유다. 현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SK그룹 물류업체의 대표이던 최철원 씨의 맷값 폭행 사건이다.

 

최철원 맷값 폭행 사건은 극 중 내용과 매우 유사하다. 2010년 10월 최 씨는 회사 인수합병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며 1인 시위를 한 유 씨를 자신의 사무실로 부른다. 그리고 야구방망이와 주먹으로 폭행한 뒤 맷값이라며 2000만원을 건넸다. 이후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인 파문이 일었지만 그는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였던 셈이다.

 

이 때문에 당시 아고라에서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명운동을 주도했던 사람은 "맷값 던져주고 사람 패놓고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돈 있고 백 있으신 분들은 맷값 던져주고 사람 패도 집행유예로 풀려나실 가능성이 농후하시겠네요"라며 서명을 독려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금력(권력)은 일반 국민의 상식과 법 위에 있었다.

 

 

 

# 장면 2

극 중 조태오(유아인)의 거듭된 망동으로 화가 난 신진그룹 회장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무엇을 했냐며 자신의 아들이 아닌, 옆자리에 앉은 참모에게 역정을 낸다. 참모는 검찰총장까지 지냈던 '전관'이다. 검찰총장까지 역임한 사람이 왜 기업 임원이 돼 있는 것이며, 신진그룹 회장은 왜 그에게 역정을 낸 것일까?

 

현실에서도 재벌은 '전관'들을 임원으로 채용하곤 한다. 그들이 위법행위를 저질러 문제가 되면 수사당국에 압력을 넣고 사건을 축소시키기 위해서다.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당시에도 이러한 움직임이 드러난 바 있다.

 

2007년 3월 김승연 회장은 자신의 아들이 술집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가해자들을 찾아간다. 물론 혼자가 아니었다. 경호원과 조폭들을 동행하고서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폭행한 가해자들을 청계산 자락의 공사장 창고로 끌고 가 보복 폭행했다. 주모자를 찾은 뒤 아들을 불러 직접 보복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네가 맞은 만큼 때려라"

 

이 사건이 발생한 뒤 남대문경찰서는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화그룹의 고문으로 재직 중이던 최기문 전 경찰청장이 남대문 경찰서장 장희곤 총경에게 전화는 넣는다. "한화그룹 폭행사건을 수사중이냐?" 통화 뒤 폭행 현장에 나가 수사 중이던 남대문경찰서 수사관들은 모두 철수했다. 전화 한 통에 폭행사건이 수면 아래로 가라 앉을 뻔한 셈이다.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언론이었다. 4월 말 몇몇 언론들이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의혹을 보도하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경찰과 검찰은 수사에 나서고, 김 회장은 구속 기소된다. 하지만 그는 거물급 '전관 변호사'들로 변호인단을 구성해 재판에 나선다. 그 결과는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그리고 이듬해 그는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다.

 

 

 

# 장면 3

극 중 조태오(유아인)은 마약쟁이다. 배 다른 형제들과 지분 다툼을 벌이거나 자신의 뜻대로 어떠한 일이 되지 않을 때면 그는 코를 킁킁거리며 마약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 나라는 마약 청정국으로 불리고 있다. 현실 속 재벌2세와 3세들도 마약 청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미명에 걸맞은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아니다.

 

2013년 오산 공군 기지에서 근무하는 한 미군의 행낭에서 1KG에 달하는 대마가 발견됐다. 1KG에 달하는 대마. 혼자서 몰래 피우려고 들여온 것이라 보이게는 많은 양이었다. 인천지방검찰청은 수사에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범현대가 3세인 정 아무개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차남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된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또 한 번 금권의 힘이 작용했던 셈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 장면 4

극 중 조태오(유아인)은 연예인을 대동해 파티를 여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인다. 그와 함께한 여자 연예인 중 한 명은 그와 내연관계였다. 조태오는 그녀가 임신을 한 뒤 난동을 피우려고 하자 강제로 마약을 주입하고 폭행한다. 재벌과 연예인의 이러한 내밀한 관계, 어디서 들어본 듯한 얘기다.

 

대표적인 것이 장자연 리스트 사건이다. 2009년 장자연 씨는 "기획사 대표에게 고위층에 대한 술시중과 성접대 강요 및 폭행에 시달리다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는 친필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그녀의 유서에는 그에게 접대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10여 명의 명단이 있었다. 이들은 언론사 대표, 방송사 PD, 기업체 대표였다.

 

경찰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41명으로 꾸려진 수사팀을 결성했다. 이들은 27곳을 압수수색하고 14만여 건의 통화내역을 조사했다. 118명의 참고인을 조사하고, 955건에 이르는 계좌 및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조회했다. 대대적인 수사를 한 셈이다. 그러나 수사 결과는 초라했다.

 

장자연 씨의 소속사 대표인 제이슨 김만이 폭행, 협박, 횡령 및 도주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집행유예를 받아 지금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또한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사람 중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명단에 오른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은 명예훼손 혐의로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한 여배우가 죽음으로 남긴 증언, 거짓이기만 했던 것일까?

 

 

# 장면 5

극 중 서도철(황정민)은 조태오(유아인)를 수사함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 경찰 윗선에서 조태오에 대한 수사 중지를 수차례 명령하기 때문이다. 이에 서도철은 기자를 통해 사건을 유포하고 여론에 힘입어 수사를 이어가려 한다. 한 기자에게 소스를 흘리며 사건을 공론화 시켜 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조태오가 속한 신진그룹은 해당 언론사 데스크와 접촉해 광고를 실어주는 대신 해당 사건을 기사화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광고를 미끼로 삼아 언론을 통제하려 한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사건이다. 언론과 기업의 긴밀한 결탁,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지난 2006년 6월 일어난 시사저널 파업 사태도 그 중 하나다. 2006년 6월 15일 삼성 관련 기사로 삼성 측의 전화를 받은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 그는 데스크에서 해당 기사를 삭제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이윤삼 편집국장 등은 이를 거부한다. 편집권 독립을 위해서다.

 

금 사장은 이에 인쇄소를 직접 찾는다. 그리고 해당 기사를 삼성 광고로 대체했다. 그 후 시사저널의 많은 기자들의 금 사장의 편집권 침해에 반발한다. 그 결과 장영희 취재팀장, 윤무영 기자, 백승기 사진부 팀장, 고재열 기자 등이 정직 혹은 무기 정직을 당한다. 기자 24명 중 무려 17명이 징계를 받는다.

 

그 뒤 1년간 시사저널 기자들은 '편집권 독립 장치 마련'을 요구하며 파업한다. 하지만 승리하진 못했다. 파업에 동참했던 22명은 2007년 회사와 결별하고 정통 시사 주간지라 불리는 <시사인>을 창간한다.

 

 

 

우리는 흔히 영화를 보며 이러한 말을 하곤 한다. '영화니깐 저렇지, 저게 말이 되냐?" 하지만 <베테랑>의 경우는 이러한 말을 쓰기가 조심스럽다.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까닭이다. <베테랑>은 위의 예시에서 보듯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도 현실과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 일개 형사인 서도철이 여러 난관을 견뎌내고 재벌 3세인 조태오의 팔에 수갑을 채우는 일이다. 현실 세계에서 이러한 일은 불가능하다. 일개 형사가 재벌 3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다? 그 전에 먼저 해당 형사가 파면당할 것이 뻔하다.

 

평론가들은 말한다. <베테랑>이 흥행하는 이유는  '정의가 사라진 시대에 정의를 바로 세우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옳다.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사회는 그만큼이나 암담하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정의는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온다." 영화 <베테랑>을 보며 그러한 생각을 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사회에 정의가 빨리, 그리고 반드시 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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