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리 엡도>의 만평은 누굴 조롱한 걸까?

 

 

지난 1월 무함마드 조롱 만평을 실어

이슬람극단주의 세력에게 테러를 당했던 <샤를리 엡도>

이번에는 난민 꼬마에 대한 만평 실어.

 

지난 1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한 풍자적 만평을 실은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게 테러를 당한 후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났다. 당시 의견은 양립됐다. '표현의 자유가 모욕적인 풍자까지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와 '모욕적 풍자까지 용인하는 것이다'로, 양립된 의견은 합일점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최근, 지난 1월 논란을 가져왔던 <샤를리 엡도>가 다시 한번 세계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표현의 자유의 범위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그들이 최근호에 실은 만평이 논란의 중심에 선 까닭이다.

 

이번 만평은 지난 3일 터키 해변에서 숨진 3살배기 시리아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도망가던 중 엄마, 형과 함께 바다에 빠져 익사했는데, 이는 동정심을 불러오며 유럽 국가들이 난민을 수용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번 <샤를리 엡도>의 만평에 대해 '불쾌하다. 아일란을 조롱했다'라며 분개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아일란을 조롱한 것이 아니라 아일란과 같은 난민을 서둘러 수용하지 않은 유럽을 조롱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샤를리 엡도>의 두 가지 만평,

'난민 꼬마 조롱' 아니면 '유럽 조롱'?

 

<샤를리 엡도>가 그린 만평은 두 가지다. 첫번째 만평에는 모래에 얼굴을 묻고 숨진 꼬마가 그려져 있다. 그 옆에는 '목표에 거의 다왔는데'라는 글귀가 적혀있고, 뒤 배경에는 '하나의 가격으로 두개의 햄버거 어린이 세트'라는 맥도날드 광고가 그려져 있다. 이 만평의 제목은 '이민자들이여, 환영한다'이다.

 

또 다른 만평에서는 예수로 보이는 남성이 물 위에 선 채 "기독교인은 물 위를 걷는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바로 옆에는 물에 거꾸로 처박힌 아이가 '무슬림 아이들은 가라앉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만평의 제목은 '유럽인이 기독교인이라는 증거'다.

 

이 만평이 난민 꼬마를 조롱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첫째 만평이 마치 아이가 햄버거를 먹기 위해 유럽으로 가고 있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고 말한다. 두 번째 만평은 무슬림을 멸시하며 특정 종교를 옹호했다고 말한다. 이들 중 일부(흑인변호사회)는 심지어 이 만평이 증오 범죄와 박해를 조장하는 것이라며 국제형사재판소에 보고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만화가 죽은 아이를 조롱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유럽을 조롱한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샤를리 엡도>가 난민 꼬마를 조롱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며, 그들은 쿠르디의 죽음을 이용해 유럽의 감성을 조롱한 것 뿐이라고 말한다. <샤를리 엡도>는 어떠한 의미에서 이 만평을 그린 것일까? 그들은 이 논란에 대해 아직까지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한편, <샤를리 엡도>의 이번 만평으로 또 한번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1월 <샤를리 엡도>에 대한 테러가 발생했을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특정 종교를 조롱하고 모욕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며 '나는 샤를리다'라는 슬로건을 사용했다. 이번에는 어떠할까?

 

표현의 자유만큼 중요한 가치도 없다만, 모든 자유는 적정한 수준에서 제한된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다. 그러한 의미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 것일까? <샤를리 엡도>가 이 만평을 통해 '아일린'을 조롱하고자 했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에게 허가된 표현의 자유는 적정한 수준이었을까?

 

[덧붙이는 말]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표현의 자유가 지켜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 4가지 근거를 댔다. 첫째,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전제가 없는 한 침묵을 강요받는 의견이 진리일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둘째, 침묵을 강요받는 의견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일부 진리를 담고 있을 수 있다. 다수의 의견이 전적으로 옳은 경우는 드물거나 아예 없다. 셋째, 통설이 진리이며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해도 제대로 된 검증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근거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하나의 편견을 갖게 될 것이다. 넷째, 소수 의견에 침묵을 강요하면 다수 의견 또는 통설이 독단적인 구호로 전락해 이성이나 개인적 경험에서 강력하고 진심어린 확신이 자라나는 것을 가로막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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