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정치혐오증을 앓고 있다. :: 김순종닷컴

나는 지금 정치혐오증을 앓고 있다.

* 이 글은 2016년 3월 27일에 쓰여졌습니다.

 

ⓒ 중앙 선관위 홈페이지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말, 틀렸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중학교 시절에 책과 담을 쌓고 지냈으니, 아마 내가 이 말을 배운 건 고등학교 시절일 것이다. 나는 성인이 되고 사회에 눈을 뜨기 전까지 오랫동안 이 말을 믿어왔다. 대의 민주주의 아래서 국민을 대표하는 일꾼을 뽑는 행위는 분명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며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 때문에 선거는 국민들에게 하나의 축제일 것이라 생각했다. 살아보니 그건 무지했던 나의 착각이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말은 교과서에나 나온 입바른 소리일 뿐, 현실에서의 선거는 시민을 대표할 대리자를 선출하는 하나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 처음 참여했고, 조금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국회의원 선거는 2008년 있었던 제18대 총선이다. 당시 총선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친박연대'의 등장이었다. 특정인의 이름이 들어간 정당이 만들어진 것도 세계 정당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지만, 당시 친이계의 주도로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한 것은 일부 권력자나 계파에 의해 민주주의의 꽃이라야 할 선거가 좌지우지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 민중의 소리

 

공천권, 보이지 않는 손

 

2016년 총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바라본 우리 정치는 지난 8년 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지난 3월 초 선거구 획정안이 통과된 뒤 각 정당이 공천 작업에 열을 올리며 보여준 모습이 그렇다. 공천은 각 정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 국회에 입성할 후보자를 낙점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의아한 장면이 몇 차례나 시현됐다. 국민적 지지를 받던 인사가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공천관리위원장이 선출된 권력인 당 대표의 위에 군림하며 당을 좌지우지하는 모습.

 

민주주의 사회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며, 국민이 선출한 대표라야 정당성을 가진다. 그럼에도 이러한 모습이 연출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구체적 사례를 보자.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청래, 이해찬 의원은 각각 공천에서 컷오프됐다. 이들은 모두 지역구민들에게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고, 전국적 지지도도 높다. 

 

한데, 그들이 속한 당에선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도 않고 이들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이유같지 않은 이유는 물론 있다. 유승민 의원은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정청래 의원에 최고위원회에서 했던 '공갈'이라는 말 한마디로, 이해찬 의원은 김종인 대표의 '정무적 판단'이란 이름으로 각각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국민 여론에 의한 것이 아닌 누구인지 모를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초래된 것이었다.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지역주의가 팽배하고, 이 때문에 사실상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의 당선은 어느 지역에서 공천을 받느냐에 달려있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아쉽다. 국민 다수가 지지하고 싶은 후보자가 있다고 해도 누군가에 의해 그 후보를 선택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있으니 말이다. 지지하고 싶은 후보자를 지지할 수 없게 하는 정당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에서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요원해 보인다.

 

ⓒ 연합뉴스

총선 18일 남은 지금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 공천권은 정당 고유의 권한이며, 공천자 선정 과정에 대해 유권자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여러 문제가 보인다. 무엇보다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2016년 3월 27일부터 총선일인 2016년 4월 13일까지는 '17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그런데 각 정당의 공약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각 정당의 공약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언론'의 탓이 크다. 언론은 정당의 공약보다 계파갈등이나 자극적인 사건을 그간 보도해왔다.

 

그렇다고 정당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새누리당은 3월 21일, 국민의 당은 3월 23일이 돼서야 총선 공약집을 발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3월 26일 총선을 위한 지역 공역집을 발간했고, 지난 12월부터 몇몇 공약을 개별적으로 제시했다. 정의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의당은 3월 17일 정책 공약집을 발간했고, 지난 1월부터 몇몇 공약을 제시했다. 정책 선거를 지향하자는 목소리가 그간 꽤나 높았지만, 선거를 한 달도 남기지 않고 공약집을 발간하는 정당들의 태도를 보면, 정책 선거는 아직 먼 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난 지금 정치혐오증을 앓고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란 말은 아직도 책 속에만 존재하는 개념인지도 모른다. 현실은 그와 반대이거나 그 이하다. 그간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며 든 생각은 하나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 아닌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하나의 요식행위일 뿐이지 않느냐는 의문. 20대 총선을 17일 앞둔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이번 선거에 임해야할 지 모르겠다. 이제야 발간된 정책집을 살펴볼 수 있을지 걱정이고, 정당의 공천 과정이 민주적이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정치권에 속한 바로 그들이 만든 것이다. 난 지금 정치혐오증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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