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화폐라는 매개체로 실격이다. :: 김순종닷컴

비트코인, 화폐라는 매개체로 실격이다.

인간은 삶의 편리를 위해 매개체를 개발했다. 좀 더 빨리 움직이기 위해 운송수단을 개발했고, 멀리 떨어진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통신을 개발했다. 화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물물교환의 버거움을 덜어내기 위해 얇고 가벼운 동전과 지폐를 만들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들 매개체는 발전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특질 때문이다. 수레에서 시작한 운송수단은 초음속 항공기로 발전하며 보다 빨라지고 안전해졌다. 우편물로 시작한 통신은 손 안에 든 작은 컴퓨터로 발전했다. 화폐는 신용카드까지 발전하다 못해 이제 비트코인 등으로 대변되는 가상폐에 이르게 됐다. 


매개체의 발전은 인간에게 유익함만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개발된 다이너마이트는 대량살상무기가 됐고, 최신 기술이 집합체인 휴대폰은 눈과 목 건강을 해침은 물론 스마트폰 중독 현상과 노모포비아를 초래했다. 


최근 일어나는 가상화폐 규제 논란에서도 우리는 인간의 편의를 위한 수단이어야 할 매개체가 그 스스로 목적이 될 때 일어나는 부작용을 발견할 수 있다.


@ Pixabay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화폐라는 수단으로서의 본질을 잊은 채 투기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비싼 값에 매수하면 비트코인의 값어치가 폭등하고, 싼 값에 매도하면 값어치는 폭락한다. 이 점에 비추어보면 가상화폐는 화폐로서의 입지를 구축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성격의 투기대상으로 전락했다. 화폐가 제 기능을 하려면 그 값어치가 균등하게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을 통해 실질적인 상품을 생산해내지 않는 무형의 자본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한다. 건전한 노동으로 상품을 생산하고 이로써 얻게 되는 소득이 한낱 무형의 자본을 거래하며 얻게되는 소득보다 적을 때 사람들은 쉬이 박탈감에 빠진다. 또한 이러한 상황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소중함을 잊게 한다. 실재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값어치는 무형의 산물을 통해 얻는 소득의 기쁨에 비해 초라한 것이 된다. 


거기다 무형의 산물에 대한 투기행위는 때에 따라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불러올 가능성도 높다. 지난 2008년 파생상품으로 빚어진 세계 금융위기가 그랬다. 2018년 1월 15일 기준 코인마켓캡에 상장된 가상화폐 1천 4백 38종의 시가총액은 원화로 약 7백 49조 9천 2백 24억 원이다. 이들 화폐의 시가총액이 국내 GDP의 3분의 2수준이라는 것은 그 투기성이 점차 짙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무형의 화폐에 대한 값어치가 갑자기 폭락한다면? 또 다른 경제위기가 발발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가상화폐를 규제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다. 18일 JTBC '가상통화 긴급토론회'에 출연한 정재승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을 현실화하기 위해 가상화폐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을 발전시킬뿐더러 그간 (국가 등이) 전적으로 독점했던 금융 권력을 심지어 개인이 가져가도록 하는 방책"이라고 주장했다. 


@ 연합뉴스


정재승 교수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먼저 화폐가 화폐로서의 지위를 가지려면 안정적인 보급과 유통을 책임지며, 그 값어치의 균등성(안정성)을 유지시킬 수 있는 기관이 있어야 함을 등한시했다. 두번째 문제는 기술의 목적이 돼야 할 인간의 안위보다 기술이라는 수단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폐는 화폐로서의 입지를 국가기관 등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기관에 의해 보장받아야 한다. 동시에 안정적인 보급이 가능하고 그 값어치의 변동이 적어야 한다. 화폐라는 수단의 등장 이유인 물물거래 수단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다. 


가상화폐의 문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지난 18일 오전부터 19일 오전까지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가치는 급락과 반등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때 가상화폐는 화폐로서의 성격을 상실한다. 화폐의 본질은 동급의 가치를 띠는 생산물을 보다 편리하게 거래하는 데 있다. 화폐 그 자체의 가치가 안정적이지 않을 때 이는 불가능한 일이 된다. 


거기다 가상화폐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수도 제한적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15일자 기사에서 비트코인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 전국 150여 매장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것을 물물교환의 수단인 화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찍이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했던 노벨은 그 기술이 인간에게 미칠 해악을 알지 못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가 대량살상무기로 쓰이게 되자 자신의 개발행위를 후회했다. 좋은 의도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냈던 과학자로서의 양심이었을 것이다. 반면 가상화폐는 이미 투기상품이 돼 우리에게 해악을 미치고 있다. 앞으로 더 큰 해악을 미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블록체인 기술의 개발을 위해 가상화폐를 규제해선 안 된다면, 그 기술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정 교수를 비롯해 비트코인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깨달아야 한다. 투기대상이 된 화폐는 화폐라는 매개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다. 기술이란 인간 안위를 위해 개발되는 수단이지, 기술을 위해 인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매개체는 매개체로서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인간이 매개체를 위한 수단이 된다면 매개체를 인간인 우리가 만들고 이용해야 할 이유가 뭘까. 


비트코인 규제는 그래서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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