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언론이 만든 불신 공화국

 신뢰없는 공동체는 이미 공동체가 아니다. 공동체라는 것이 성립하기 위한 최우선적 조건은 구성원 간의 신뢰다. 구성원 간의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운명이나 생활, 목적 등을 공유하는 집단'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공동체는 성립할 수 없다. 구성원 간의 신뢰를 잃은 공동체는 국민이 없는 국가나 자본이 없는 기업과 다름 없다. 그래서, 신뢰를 잃은 공동체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지속되길 바라는 것은 토끼 머리에 뿔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망상이자 과욕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신뢰도 점수는 100점 만점에 57.4점에 불과했다.


 지난 1월 25일 <세계일보>는 여론조사 기관인 리서치앤리처치에 의뢰해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국가 주요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100점 만점에 평균점은 57.4로 거의 반수에 달하는 대상자가 국가 기관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OECD가 회원국 국민의 정부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한국은 32.2점을 기록하며 29개 회원국 중 25위를 기록한 바 있다. 가히 불신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한국이 '불신 공화국'이라는 별칭을 얻은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 사회 구성원 간의 불신이 암 세포처럼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이 전해진 후 각종 게시판과 기사 댓글에는 정부와 국정원이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을 감추기 위해 이번 사고를 조작했다는 글들이 뜨기 시작했다. 이후 이러한 주장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여전히 이번 사고와 관련한 음모론은 계속 되고 있다. 이러한 음모론이 제기되는 이유는 결국 정부와 언론의 탓이다. 그들은 이번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국민의 바람과는 다르게 구조 작업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고, 연일 잘못된 발표와 오보를 반복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에 대한 불신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불신의 지점에서 음모론은 고개를 든다.


국정원의 간첩 증거 조작 사건 등은 정부 스스로가 불신을 자초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세월호와 관련한 일련의 움직임만이 불신의 시대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북한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무인기 사건과 관련해서도 정부와 언론 사이에 국민들 사이에 상호 간의 진실 게임이 존재했다. 채동욱 검찰 총장 사건과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등도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진실 게임의 실례다. 이러한 진실게임이 계속되는 것은 잘못된 여론몰이나 진실을 은폐하려는 자들에 의해 사회적 불신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이제 국민들은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나 정부의 발표 자료를 신뢰하지 않는 단계까지 왔다. 


 사회적 불신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가장 빨리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불신을 고조시킨 주범이 쥐고 있다. 엉킨 실타래를 가장 잘 풀 수 있는 사람은 엉킨 실타래를 만든자인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사회적 불신을 고조시킨 주범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민들에게 신뢰를 줘야 할 정부와 언론이었다. 정보기관이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하고,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중국 정부의 공문서를 위조한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그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불법적 개입과 위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가 어찌 그러한 정부, 그러한 국정원을 신뢰할 수 있겠나. 그들을 신뢰하라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두고 안심하라는 말과 다름 없다.


 정부기관의 논리에 편승한 일부 언론들도 정부의 말에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집단을 종북주의자로 몰아세우며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된 보도를 해왔다. 이러한 정부와 일부 언론들의의 추태를 목격한 국민이 그들에 대한 불신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세월호 구조 과정에서도 국민이 각 언론과 정부를 믿지 못하고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 고위 인사들을 성토하는 것은 비단 현 상황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 동안 그들이 불신을 주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한 이유가 크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된 불신의 경험은 오늘 우리가 바라보듯이 공동체 내부의 신뢰를 파괴하고 있다. 


좋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선 신뢰가 충만해야만 한다.


 글의 시작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뢰가 없는 공동체는 이미 공동체가 아니다. 신뢰하지 못할 타인, 신뢰하지 못할 지도자, 정부와 어찌 '운명이나 생활, 그리고 목적을 공유하는 집단'인 공동체를 꾸릴 수 있겠나. 그래도 아직 대한민국에 희망은 남아 있다. 이번 세월호 현장에서도 본 것처럼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량한 얼굴의 이웃들이 남아있는 이유다. 그들은 이 사회에 심겨진 불신의 씨앗이 성장하는 것을 억제해왔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신의 씨앗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공동체를 보호해야 할 책무를 지닌 자들이 그 책무에 소홀한 채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바로 그 현장에서 말이다. 


 나쁜 지도자, 정부, 언론은 자신의 안위만을 돌보지만, 좋은 지도자, 정부, 언론은 공동체를 안위를 돌보는 법이다. 눈 앞의 사소한 이익에 골몰하는 정부와 언론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부와 언론이 존재할 때, 우리 공동체의 미래는 밝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밝은 미래는 그들을 통해 공동체 내부의 신뢰가 점차 공고화될 때 한 발자욱 더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 정부와 언론은 지금까지와 같이 이 나라를 불신의 공화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뢰의 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힘써야만 한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부, 그리고 언론이 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그들이 이루어야 할 최우선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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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 이 재 훈
    2014.04.20 10:35

    그렇습니다. 신뢰가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고리입니다. 각자가 이 고리에 연결되어 자신의 임무를 다 할 때, 공동체내의 개인의 삶이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동체의 지도자가 해야 할 의무입니다. 이러한 의무는 인간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물세계에서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 동물들도 수 처년 동안 종족을 보존해 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할 것은 왜 이와같은 사회가 만들어 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할 수록 인간이 교활해 지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다른 원인 있기 때문입니까?.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평할 때. 한국인들의 "빨리 빨리"문화를 종종 거론합니다. 즉 생활의 여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무엇에 쫓기기에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 마치 살인범이 자신의 범행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을 겁내는 모양과 흡사합니다. 그런 그는 생활의 여유를 가질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빨리 빨리 일을 처리하도록 유도했는가를 연구해야 할 때입니다. 바로 지금이 적기입니다.

  • 2014.04.20 18:10 신고

    이번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무너진 공동체의 신뢰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로 이어지는지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불신의 시대를 종언할 획기적인 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 2014.04.20 19:43 신고

    정말 답답함에 심장이 터질듯합니다.

  • hyunlee
    2019.06.11 21:59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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